태양의 피가 흐르면

맷 번즈

데즈코는 죽은 아내의 머리카락 타래를 붙잡고 의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 뒤로 두 달의 제단이 밤의 어둠 속에 침묵했다. 심지어 이곳에서 가장 붐비는 황금 정원도 조용했다. 데즈코는 그 점에 감사했다. 거대한 바위 단상은 온전히 그와 돈체이서 부족의 것이었다. 지금은 오직 하나에만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황금 정원 위로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데즈코의 뿔과 손목, 가죽 조끼에 매달린 하얀 초원매 깃털과 대지의 색을 띤 작은 나무 부적을 흔들었다. 그는 의식을 위해 준비한 장식을 보며 다소 실망했다. 고향인 멀고어에 있었더라면 제대로 된 의식용 옷을 차려 입었을 터였다. 하지만 여기, 고향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낯선 판다리아에서는 간단히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족해야 했다.

레자도 이해할 거라고, 그는 혼잣말을 했다. 신경쓰지 않을 거라고.

데즈코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치고, 황금 정원 너머로 영원꽃 골짜기의 달빛 비추는 언덕과 우거진 수풀을 바라봤다. 한밤중에도 이곳 풍경에는 보는 이를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변화의 도가니"라고 레자는 불렀었다. "황금빛 꽃으로 덮인, 평화에 대한 희망이 가득한 골짜기"라고.

여러 달 동안, 그녀는 꿈에서 이 골짜기를 봤다. 데즈코와 다른 타우렌들도 그 환영을 봤지만, 레자의 것이 가장 강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부족은 판다리아를 찾아내는 험난한 여행길도, 또 이 대륙의 심장부 깊이 숨은 골짜기를 찾아내는 과정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길은 험난했다. 맹렬한 폭풍이 몰아쳐 데즈코의 부족민들이 탄 배 세 척을 파괴했다. 모두 친구와 가족이었다. 마지막 배가 판다리아의 무더운 해안에 도착했을 때, 또 죽음이 찾아왔다. 레자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그 암울한 상황에서 데즈코의 걱정을 더욱 키웠다. 결국 그의 아내는 열병에 걸렸고, 부족민들이 모두 애를 썼지만 치료할 수가 없었다. 레자는 이 모든 일을 언제나 강인하게 견뎌내며, 모든 선워커 부족민들에게 희망의 봉화가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직 밤이지만, 곧 해가 떠오를 거예요. 가까이에서 느껴져요."

마침내 출산이 시작되었지만, 그 고통은 병마를 앓는 그녀에게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녀는 부족이 이 골짜기를 발견하기 몇 주 전에 죽었다. 고통이 끝나간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으면서. 그 끔찍했던 날은 데즈코의 기억에 남은 날카로운 이빨 자국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열병이 아내의 핏줄에서 생명을 거둬들이던 순간, 그 때 그녀의 고통에 찬 마지막 비명도. 그녀를 죽음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려는 그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후, 결국 그녀의 장례식 장작불에서 피어오르던 연기와 불꽃까지...

"태양의 피가 흐릅니다!" 데즈코 뒤에서 다른 타우렌이 외치는 소리에 데즈코는 현재로 돌아왔다.

희미한 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골짜기를 보랏빛과 금빛으로 물들였다. 동이 트기 전, 즉 태양의 다른 이름인 안쉬가 여전히 숨어 있지만 그 빛이 어떻게 해서인지 세계로 흘러드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데려오시오." 데즈코는 동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손짓을 했다.

레자의 조카인 날라가 두 아기 타우렌을 품에 안고 조용히 다가왔다. 의식을 위해 매어둔 깃털과 구슬이 아이들의 작은 뿔에서 흔들거렸다. 첫째는 레드혼, 둘째는 클라우드후프였다. 데즈코는 아내의 갈기 타래를 날라에게 건네고, 레자의 마지막 선물들을 품에 안아 들었다.

"시작하시오!" 데즈코가 명령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뒤쪽에 앉아 있던 열두 명의 타우렌들이 작은 가죽 북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 박자는 전투가 있기 전날 밤 전사의 심장처럼 빨리 뛰었다.

날라가 레자의 머리카락을 데즈코의 갈기에 묶자, 그는 자신의 아들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잘 보렴, 얘들아."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하품을 하고 반쯤 뜬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매일 아침, 안쉬가 피를 흘린단다." 데즈코가 말을 이었다. "자신의 빛을 희생해 우리에게 새벽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지.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야. 예에나에가 그를 돕는다. 바로 너희 어머니가 그랬었단다."

어제, 레자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낮에 쌍둥이 달이 나타났다. 그녀의 영혼이 마침내 예에나에, 즉 "새벽을 알리는 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신호였다. 마침내 그녀도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거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다가 목숨을 잃은 위대한 조상님들과 함께 앉은 것이다.

안쉬가 넘을 수 없는 산 위로 고개를 내밀자 북소리가 잦아들었다. 꿀빛으로 펼쳐진 들판에서 태양빛이 반짝였다. 키 큰 상아색 나무 위에서 황금 잎사귀가 바람결에 부스럭거렸다. 데즈코는 이곳에서의 일출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이렇게 찬란한 안쉬의 빛은 여전히 놀라웠다. 안쉬의 시선은 골짜기에만 내려앉고, 다른 지역에는 여기서 반사된 빛만 닿는 것 같았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어떤 면에서는 잔인하기도 했다. 데즈코와 그의 부족은 골짜기에 도착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호드의 정치는 한없이 그들을 성가시게 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북부 지역에서 밀려온 수많은 피난민들이 음식과 쉴 곳을 찾아, 또 다툼을 피해 밤낮 없이 제단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그의 아들들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고, 종일 울며 먹을 것을 거부했다. 데즈코와 날라는 대체 무슨 병인지라도 알아내려 했지만, 수확은 없었다. 그래도 안쉬의 은혜인지, 오늘 아침 레드혼과 클라우드후프는 괜찮아 보였다. 어쩌면 이 의식이 그들을 치유했을지 모른다고, 데즈코는 생각했다.

"저기 좀 보세요." 날라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골짜기를 가리켰다.

데즈코는 난간 너머를 내다봤다. 두 달의 제단으로 통하는, 흙과 돌로 잘 다져진 길 위에서 많은 형체들이 움직였다. 밝아오는 새벽빛에 그들의 그림자는 마치 죽 뻗은 팔처럼 땅 위로 늘어졌다.

"황금 연꽃이군." 다른 일행들과는 다른 한 명을 알아보고, 데즈코가 말했다. 힘센 모키모의 걸음걸이는 멀리서 봐도 확연히 드러났다. 다른 호젠들처럼, 그도 긴 근육질 팔이 거의 땅에 끌릴 듯 흔들며 걸었다. 데즈코는 다른 황금 연꽃들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이 골짜기의 고대 수호자들이 이렇게 여럿 제단을 향해 다가온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보통 그들은 이 지역 중앙에 있는 만남의 장소, 황금탑에 머무는 일이 많았다.

"그 소문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날라의 목소리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소문은 절대로 믿지 말거라." 데즈코가 답했다. 그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다. 골짜기의 보호자들이 비밀리에 회동하여,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이 지역의 여러 곳을 방문한다는 얘기였다. 황금 연꽃과 데즈코의 부족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모키모라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었겠지만, 그도 지금까지 일주일이 넘게 제단을 떠나 있었다. 그래도 데즈코는 걱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황금 연꽃은 비밀스러운 집단이었지만, 믿음직한 동맹이기도 했다.

"알아요." 날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걱정이에요. 아픈 게 다 지나갔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고요. 손님들 때문에 더 악화될 수도 있잖아요." 그녀는 레드혼의 볼을 쓰다듬었다. 레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아내의 사촌은 열렬히 아이들을 보호했다. 데즈코는 그녀를 이해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이 아이들은 그녀의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다.

"황금 연꽃이 여기 있는 동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렴." 데즈코가 말을 이었다. "의식이 끝난 후에 말이야."

그 말과 함께,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사원의 무덤 같은 통로에서 일찍 일어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황금 정원에서는 커다란 목소리와 묵직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낑낑대며 흔들거리는 가판대를 세웠고, 피난민들은 한 데 모여 음식을 나눴다. 데즈코를 따라 골짜기에 온 오크와 블러드 엘프, 그리고 호드의 다른 구성원들이 단상에서 함께 어울렸다.